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는 말밖에 하지 않으십니다. “큰딸을 믿고 있다!” 는 말과 함께. 다
른 이야기를 하다 괜히 감정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이
젠 서로 지쳐버린 상태이지만, 아버지와 제가 서로를 사랑하는 건
분명합니다. 너무 보고 싶고, 이름 석 자 들으면 눈물이 나는 것 또
한 분명합니다.
여동생과는 가까이에 살고 있지만 평일에는 제가 기숙사 생활을
하느라 주말에만 간신히 만날 수 있습니다. 그룹홈, 새로운 가족의
단체 문자방에서 간간히 올라오는 동생의 활동사진을 보며 ‘잘 있
구나’ 짐작하고만 맙니다. 평일에 지칠 대로 지친 제가 주말이 되
어 집에 가더라도 자거나 틱틱댈 뿐 동생과 그 흔한 애정 표현으로
끌어안아본 적이 없습니다. 어렸을 적 웃으며 장난치던 건 온데간
데 없고 이젠 서로에게 예민해져가고 있습니다. 사춘기인 동생을
혼자 두자니 마음 한 구석이 깨진 둑과 같습니다. 전 이렇게 저와
피를 나눈 가족들이 아침에 뭘 먹었는지, 점심엔 뭘 먹었는지, 저
녁엔 뭘 먹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. 한국인은 밥심이라던데, 다
들 밥심으로 힘들고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잘 견디고 있는지 모르
겠습니다.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던데, 다들 희소식대로 잘 살고 있
는지 모르겠습니다.
전 나름 대한민국에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고등학생
인데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. 제가 하고 싶은 공부도 꾸준히 하
면서 가족들이 하루 세 끼 제때 챙겨먹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삶을
살고 싶습니다. 가끔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가족들이 좋아하는 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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